조선 중기의 문신, 문장가. 자는 백익(伯益). 호는 안분당(安分堂). 현감 극문(克文)의 아들이다. 1501년(연산군 7)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고, 연산군 때 홍문관수찬, 이조정랑, 내수사별제(內需司別提) 등을 역임하였다. 1506년(중종 1) 직제학에 재직중 연산군의 나인 장녹수(張綠水)에게 아부하였다는 사헌부의 탄핵을 받고 이듬해 파직되었다. 1509년 다시 기용되어 연서도찰방(延曙道察訪), 선산부사, 예빈시첨정(禮賓寺僉正), 돈령부정, 장례원판결사, 공조참의, 나주목사, 여주목사 등을 역임하였다. 중종이 여러번 성균관대사성에 임명하려 하였으나 사헌부의 반대로 임명되지 못하다가, 1536년 대사성 동지(同知)가 되었다. 그뒤 대호군, 첨지중추부사 등을 지냈고, 문장에도 능하였다. 저서로는 '안분당시집' 2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