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전기의 문신. 호는 하촌(荷村). 증조부는 박광리(朴光理), 조부는 박소(朴蘇)이고, 아버지는 진사(進士) 박지흥(朴智興)이고, 어머니 계성서씨(桂城徐氏)는 생원(生員) 서종하(徐宗夏)의 딸이다. 문간공(文簡公) 눌재(訥齋) 박상(朴祥)과 육봉(六峯) 박우(朴祐)의 형이다. 1492년(성종 23)에 임자식년사마시(壬子式年司馬試)에 생원으로 합격하고, 두 동생 박상(朴祥), 박우(朴祐)를 가르쳤다. 당시 사람들이 ' 송(宋) 나라에는 소순(蘇洵), 소식(蘇軾), 소철(蘇轍) 삼소(三蘇)가 있고 동국(東國)에는 삼박(三朴)이 있다.'고 칭송하였다. 점필재(○畢齋) 김종직(金宗直)이 호남관찰사(湖南觀察使)로 부임하였을 때 그를 보고 기특하게 여겨 '나라의 큰 그릇이다.'고 칭찬하였다. 동생 박우는 1510년(중종 5) 경오식년문과(庚午式年文科) 병과 16등에 급제하여 유수(留守)에 이르렀으며, 박상(朴祥)은 1496년(연산군 2) 병진증광사마시(丙辰增廣司馬試) 생원 2등, 1501년(연산군 7) 신유식년문과(辛酉式年文科)에 을과 5등, 1526년(중종 21) 병술중시(丙戌重試)에 장원 급제하여 청현직(淸顯職)을 두루 지내서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이르렀다. 박우의 아들 사암(思庵) 박순(朴淳)도 그의 문하에서 수학하여 학문을 대성하였다. 그러나 박정은 불행하게 일찍 세상을 떠났고 평소의 저술도 대부분 소실되어 '서석산부(西石山賦)' 한 편만 전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