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변상회(邊尙會)
  • 원주변씨(原州邊氏),  출생~사망 : 1399 ~ 1485
조선 전기의 문신. 호는 무송당(撫松堂). 증조부는 변량(邊諒)이고, 조부는 원천부원군(原川府院君) 변안렬(邊安烈)이며, 부친은 원종공신(元從功臣) 좌군총제(左軍摠制) 변이(邊○)이다. 외조부는 남좌시(南佐時)이고, 처부는 유이생(柳易生)과 김관(金灌)이다. 1417년(태종 17)에 정유식년사마시(丁酉式年司馬試)에 생원(生員)으로 합격하고, 1434년(세종 16)에 갑인알성문과(甲寅謁聖文科) 을과(乙科) 3등으로 급제하여 승정원주서(承政院注書), 예조, 병조좌랑(兵曹佐郞)과 정랑(正郞)을 거쳐 정언(正言), 지평(持平), 장령(掌令), 승문원사(承文院事), 군자(軍資) 선공판사(繕工判事) 등을 역임했다. 외직으로 함주, 양주, 원주의 수령을 지내면서 공적을 인정받아 내직으로 돌아와 예조참의(禮曹參議)로 재직 중에 참소를 당하자 관직을 버리고 낙향하였다. 문신임에도 무술에도 뛰어났는데, 특히 활쏘기의 달인으로 유명했고, 또 풍류를 즐기며 다른 사람과의 교류를 삼가면서 명리를 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벼슬길이 순탄치 않았다. 그러나 다시 가선대부(嘉善大夫)에 특가(特加)하면서 호조참판(戶曹參判)과 이조참판(吏曹參判)에 제수되었다. 1479년(성종 10)에 인정전(仁政殿)에서 양로연(養老宴)을 행했을 때, 왕이 친히 여러 원로대신에게 술잔을 돌렸는데 변상회도 검참판(檢參判)의 신분으로 참석하였다. 아들 변수(邊修)는 호조 및 병조, 형조, 공조참의(工曹參議)를 거쳐 충청, 경상, 함경도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를 지냈다. 사후에 예조판서(禮曹判書) 겸 예문관제학지경연춘추관사(藝文館提學知經筵春秋館事) 원평군(平原君)으로 추증되었다. 묘는 남양주(南楊州) 별내면(別內面) 광전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