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전기의 문신. 조의 아들이다. 1474년(성종 5)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1486년 사헌부지평, 1490년 이래 성균관 관원이 되어 가르치는 데 명성이 있었다. 1493년 조봉대부(朝奉大夫)에 올라 사헌부장령이 되었다. 그 이듬해 전국각지의 명산대천에 기도하는 사신으로 뽑혀 양진(楊津)으로 파견되었다. 1495년(연산군 1) 사헌부사간을 거쳐 성균관대사성이 되고, 1504년(연산군 10) 성균관동지사를 겸하였다. 같은해 동지중추부사, 한성부좌윤, 한성부우윤 등에 올랐다. 1506년(중종 1) 중종반정으로 정국공신 4등으로 녹권되어 이성군(利城君)에 책봉되며 대사헌에 발탁되고, 글의 뜻에 밝았으므로 오로지 성균관 에서의 가르침을 담당하게 하였으며 기성군(岐城君)으로 개칭되었다. 1519년(중종 14) 기묘사화로 유배되었으며, 명종 때에 신원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