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한훈(韓訓)
  • 청주한씨(淸州韓氏),  출생~사망 : ? ~ 1504
조선 전기의 문신. 자는 학고(學古). 군사(郡事) 영정(永○)의 증손으로, 참의 전의 손자이고, 수군절도사 충인(忠仁)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김중엄(金仲淹)의 딸이다. 도승지 신수근(愼守勤)의 처남이다. 1494년(성종 25) 별시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1495년(연산군 1) 정언(正言)을 거쳐 수찬, 소격서영(昭格署令)을 역임하였다. 1497년 이조에서 그 한 사람만을 홍문관부교리로 의망(擬望)하자 헌납 손중돈(孫仲暾)이 의망의 부당성을 제기, 논박하여 죄주기를 청하였는데 신수근의 정병(政柄)에 힘입어 탄핵이 면해졌다. 1498년 김일손(金馹孫)과 함께 성종의 묘제의(廟制議)를 송나라 인종(仁宗)의 고사(故事)에 따라 백세불천지주(百世不遷之主)로 할 것을 기초(起草)한 사건에 연루되어 이성(利城)에 부처되었으나, 1501년 특방(特放)되었다. 1504년 김감(金勘), 임사홍(任士洪), 강혼(姜渾) 등이 이극균(李克均), 이세좌(李世佐), 윤필상(尹弼商), 조지서(趙之瑞), 이주(李胄), 한훈, 홍식(洪湜), 전향(田香), 수근비(水斤非)의 죄명문(罪名文)을 진사(進辭)하면서 ' 한훈은 간원(諫員)으로서 임금을 업신여기는 마음을 품고 도리에 어긋난 말을 하니 형법에 따라 그 죄를 엄히 다스리고 부관(剖棺)하여 능지(陵遲)하고 그 가산을 적몰하고 그 집을 폐허로 하여 돌을 세워 죄악을 줄이고 후세로 하여금 경계하게 하여야 한다.'고 간언함에 따라 부관능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