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전기의 문신. 자는 통지(通之). 호는 동계(桐溪). 아버지는 광흥창주부(廣興倉主簿) 임(琳)이다. 1492년(성종 23)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예문관검열이 되었고, 1495년(연산군 1) 독서당에 뽑혀 사가독서(賜暇讀書) 하였다. 정언, 이조좌랑을 역임한 뒤 동지사의 종사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495년 대교(待敎)로서 검열 강징(姜○)과 함께, 왕명을 내릴 때에는 승지와 사관(史官)이 반드시 참석하도록 건의하였다. 1498년 수찬에 올라 부교리를 역임하고, 1504년 연산군의 생모 윤씨를 종묘에 모시려 하자, 그 부당함을 주장하다가 의금부에 하옥되어 장(杖) 60의 처벌을 받고 용궁(龍宮)에 유배되었다. 그해 11월 용궁에서 다시 의금부로 압송되어 국문을 받던 중 옥사하였다. 그는 기개와 절조가 있는 인물이었다는 평을 받았다. 중종 때 도승지에 추증되었다. 1693년(숙종 19) 함창 임호서원(臨湖書院)에 제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