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남언기(南彦紀)
  • 의령남씨(宜寧南氏),  출생~사망 : 1534 ~ ?
조선 전기의 문신. 자는 장보(張甫), 계헌(季憲). 호는 고반(考槃), 정재(靜齋). 고조부는 좌의정 지(智), 아버지는 부사 치욱(致○)이며, 어머니는 지중추부사 유진동(柳振仝)의 딸이다. 이황(李滉), 김인후(金麟厚)의 문인이며, 어려서 이항(李恒)과 함께 인심도심설(人心道心說)을 토론하며 학문에 열중하였다. 그리고 정철(鄭澈), 변성온(卞成溫), 기효간(奇孝諫) 등과도 교유하였는데, 특히 이황은 '동방의 도학을 전수할 사람'이라고 하였다. 1568년(선조 1) 생원이 되고 학행으로 영의정 이탁(李鐸)의 천거를 받아 동몽교관(童蒙敎官)을 거쳐 빙고별좌가 되었다. 그러나 곧 사직하여 동복(同福)의 사평촌(沙坪村)에 정자를 짓고 인근의 선비들과 학문을 토론하며 서예에 열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