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이환(李芄)
  • 덕수이씨(德水李氏),  출생~사망 : 1484 ~ ?
조선 전기의 문신. 자는 자패(子佩). 증조부는 이명신(李明晨), 조부는 이추(李抽)이고, 아버지는 사간(司諫) 이의무(李宜茂)이다. 외조부는 성희(成熺)이고, 처부는 조수만(趙壽萬)이다. 첫째 형 이기(李○)는 1501년(연산군 7) 신유식년문과(辛酉式年文科)에 병과 15등으로, 둘째 형 이행(李荇)은 1495년(연산군 1) 을묘별시문과(乙卯別試文科)에 병과 15등으로, 본인은 1515년(중종 10) 을해별시문과(乙亥別試文科)에 을과(乙科) 2등으로 급제함으로써 세 형제가 모두 문과에 급제하게 되어 조정에서 1516년에 그 부모를 추증(追贈), 치제(致祭)하였다. 1519년 검토관(檢討官), 1520년(중종 15) 이조좌랑(吏曹佐郞), 홍문관교리(弘文館校理), 부교리(副校理)를 거쳐 이듬해에 경차관(敬差官)을 지냈다. 1524년 평안도어사(平安道御使), 장령(掌令), 홍문관직제학(弘文館直提學), 시강관(侍講官)을 지냈다. 1525년 시독관(侍讀官), 승지(承旨), 우부승지(右副承旨), 평안도관찰사(平安道觀察使), 좌부승지(左副承旨)를 지냈다. 이듬해 우승지(右承旨), 충청도관찰사(忠淸道觀察使), 좌승지(左承旨) 등을 역임했다. 1528년(중종 23) 좌승지, 평안도관찰사, 도승지(都承旨), 한성부우윤(漢城府右尹)을 지냈고, 이듬해에 진위사(陳慰使)가 되어 명에 다녀온 후 동지돈령부사(同知敦寧府事), 강원관찰사(江原觀察使)가 되었다. 이듬해에 전라도관찰사(全羅道觀察使)를 지냈고 1531년(중종 26)에 다시 한성부우윤을 지냈는데 1534년(중중 29) 명나라에 갔을 때의 행적으로 인해 대간(臺諫)의 탄핵을 받기도 했다. 1537년(중종 31)에는 흉특시험지인(兇慝猜險之人)으로 탄핵을 받아 직첩이 파해졌고 이듬해 다시 사간원의 탄핵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