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전기의 문신. 자는 자치(子治). 조부는 금천부원군(錦川府院君) 박은(朴誾) 으로, 태종을 임금으로 추대하여 좌명공신(佐命功臣)이 되었고, 의정부좌의정(議政府佐議政)을 지냈다. 아버지는 세조를 도와 좌익공신(左翼功臣)이 된 금천군(錦川君) 박강(朴薑)이고, 어머니는 흥녕군(興寧君) 안숭직(安崇直)의 딸이다. 음직(蔭職)으로 벼슬에 나아가 형조(刑曹), 공조정랑(工曹正郞), 한성부서윤(漢城府庶尹), 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 집의(執義), 예빈시(禮賓寺), 상의원(尙衣院), 군자감정(軍資監正), 군기시정(軍器寺正) 등을 역임하였다. 외직으로 영천군수(榮川郡守), 진주(晉州), 충주목사(忠州牧使)를 지냈다. 부인 창녕성씨(昌寧成氏)는 영춘현감(永春縣監) 성효원(成孝源)의 딸로, 5남 1녀를 두었다. 박해(朴垓)는 생원(生員), 박기(朴基), 박호(朴壕)는 진사(進士), 박감(朴○)은 사과(司果)이며, 박연(朴堧)은 1507년(중종 2) 정묘식년사마시(丁卯式年司馬試) 진사(進士)에 합격하였다. 딸은 충의위(忠義衛) 이기(李技)에게 시집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