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전기의 문신. 자는 자첨(子瞻). 호는 하당(荷塘), 남강(南岡), 동강(東岡). 대사헌 유연재(悠然齋) 김희수(金希壽)의 증손으로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김노(金魯)의 손자이며, 사재감정(司宰監正) 김홍도(金弘度)의 아들이다. 허난설헌(許蘭雪軒)의 시아버지이다. 부인은 숙부인(淑夫人) 은진송씨(恩津宋氏)이다.
1576년(선조 9)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1579년 사가독서 하였다. 그해에 유성룡(柳成龍) 등과 함께 이이(李珥)가 올린 상소에 대해 옳지 않다고 탄핵하였으며, 1581년 이조좌랑으로서 박근원을 이조참판에 등용할 것을 주청하였다. 1582년 교리를 거쳐 고경명(高敬命) 대신 경상도재상경차관(慶尙道○傷敬差官)으로 나아갔다. 이듬해 종사관이 되어 중국에 다녀온 뒤 이이를 탄핵하다가 지례현감(知禮縣監)으로 좌천되고, 1584년 파직되었다가 임진왜란 때 죽었다.
1576년(선조 9)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1579년 사가독서 하였다. 그해에 유성룡(柳成龍) 등과 함께 이이(李珥)가 올린 상소에 대해 옳지 않다고 탄핵하였으며, 1581년 이조좌랑으로서 박근원을 이조참판에 등용할 것을 주청하였다. 1582년 교리를 거쳐 고경명(高敬命) 대신 경상도재상경차관(慶尙道○傷敬差官)으로 나아갔다. 이듬해 종사관이 되어 중국에 다녀온 뒤 이이를 탄핵하다가 지례현감(知禮縣監)으로 좌천되고, 1584년 파직되었다가 임진왜란 때 죽었다.
묘(墓)는 경기도 초월읍 지월리 산 29-5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