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전기의 문신. 자는 자징(子澄). 호는 송은(松隱). 증조부는 양구주(梁九疇)이고, 조부는 남원군(南原君) 양성지(梁誠之)이며, 부친은 동부승지(同副承旨) 양찬(梁瓚)이다. 1502년(연산군 8)에 천거로 빙고별제(氷庫別提)를 거쳐 예빈시주부(禮賓寺主簿),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 장예원사평(掌隷院司評), 충익부도사(忠翊府都事), 의영고령(義盈庫令), 군자감정(軍資監正), 한성부판관(漢城府判官), 예빈시첨정(禮賓寺僉正), 사섬시정(司瞻寺正),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을 역임하였다. 외직으로는 함경도사(咸鏡都事), 공주판관(公州判官), 양근군수(陽根郡守), 이천부사(利川府使), 정주목사(定州牧使)를 지냈으며 후에 병조참판(兵曹參判)에 증직되었다. 20여 년간의 관직생활을 하는 동안 근면하게 공무를 처리한다는 평을 받았다. 묘는 경기도 군포시 부곡동 산 78번지에 있다. 비문은 김안국(金安國)이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