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전기의 문신. 자는 자문(子文). 호는 초당(草堂). 아버지는 순민(舜民). 김종직(金宗直)의 문인이다. 1477년(성종 8)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정자가 되고, 1489년 홍문관교리로서 전라도암행어사가 되었다. 1497년(연산군 3) 중시에 병과로 급제, 사헌부집의가 되고 이듬해 무오사화로 결장(決杖) 1백, 유(流) 3천리, 봉수군정 노우정역(烽燧軍庭爐于定役)의 처벌을 받아 회령에 유배되었다. 1501년 방환되어 직첩이 환급되었으나, 당시에는 대간, 홍문관에는 서용(敍用)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뒤 대사간으로서 사간 김당(金○), 헌납 김숭조(金崇祖)와 더불어 시정(時政)을 논하면서 납간(納諫), 친현사(親賢士), 흥학교(興學校) 등 12개항을 건의하였다. 그는 남효온(南孝溫), 권경유(權景裕) 등과 더불어 사장(詞章), 정사(政事), 절의, 효행 등으로 이름이 높았다. 저서로는 '초당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