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신항(申沆)
  • 고령신씨(高靈申氏),  출생~사망 : 1477 ~ 1507
조선 전기의 문신. 자는 용이(容耳). 고령부원군(高靈府院君) 숙주(叔舟)의 증손으로, 예조참판 종호(從濩)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의창군(義昌君) 공의 딸이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7, 8세에 글을 읽은 지 몇 해 만에 '시경'을 배우고, '황산곡집 黃山谷集'을 외우는 데 한자도 틀림이 없었다. 14세에 성종의 제1녀 혜숙옹주(惠淑翁主)를 아내로 맞아 순의대부(順義大夫)에 오르고 고원위(高原尉)에 봉해졌다. 부친상을 당하자 3년 동안 시묘살이를 하였으며, 탈복한 뒤 관직에 돌아와 1499년(연산군 5)에 오위도총부 도총관을 겸하였다. 1501년에 자의대부(資義大夫), 뒤이어 귀후서제조(歸厚署提調), 통헌대부(通憲大夫)에 올랐다. 1504년에 풍원위(豊原尉) 임숭재(任崇載)의 참소로 의금부에 하옥되었으며, 통헌대부가 거두어지고, 궁궐출입이 금지되었다. 이에 두문불출하고 빈객을 맞지 않으며 적막하게 스스로를 지켰다. 중종반정 후 반정에는 가담하지 않았으나 원종공신(原從功臣) 1등에 책봉되고 봉헌대부(奉憲大夫)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