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전기의 문신. 자는 언후(彦厚). 호는 칠촌(漆村). 김기(金祈)의 손자이자 충순위(忠順衛) 김석(金碩)의 아들로 김형(金逈)의 아버지이다. 1540년(중종 35) 경자식년사마시(庚子式年司馬試)에 생원(生員) 2등으로 급제하였다.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를 좇아 당대에 문학으로 명성을 얻었으며 향교를 중수하여 유학를 부흥시켰다. 박광옥(朴光玉)이 쓴 '음기(陰記)'에 따르면, 그가 유학(幼學) 이만인(李萬仁)과 함께 묘우(廟宇)를 새롭게 중건하였으며이 때문에 학교의 규범과 제도가 바르게 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이 흥학비(興學碑)에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