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전기의 문신. 자는 언진(彦鎭). 호는 소쇄옹(瀟灑翁). 조부는 부사직(副司直) 양윤신(梁允信)이고, 아버지는 창암(蒼暗) 양사원(梁泗源)이다. 어머니는 신평송씨(新平宋氏)이다. 정랑(正郞) 김후(金珝)의 딸인 광산김씨(光山金氏)와 결혼하여 3남 1녀를 두었다. 어려서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의 문하에서 학문을 배웠으며, 이후 성균관에 유학하였다. 1519년(중종 14) 중종이 친히 주관한 시험에서 17세의 나이로 합격하였으나, 대간(臺諫)들의 반대로 취소되고 이를 애석히 여긴 중종이 물품을 내려 위로하였다. 그 해 기묘사화(己卯士禍)로 조광조가 실각하자 전라남도 담양(潭陽)으로 내려와 소쇄원(瀟灑園)을 짓고, 자호를 소쇄옹(瀟灑翁)이라 하였다. 평소 '대학(大學)'과 '중용(中庸)'을 깊이 연구하였으며,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 청송(聽松) 성수침(成守琛)과 교유하였다. 조광조 사후 하서와 함께 사림(士林)의 폭넓은 지지를 받았다. 병환이 있어 1557년(명종 12) 3월 20일 5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