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전기의 문신. 자는 언부(彦孚). 창릉참봉(昌陵參奉) 나세걸(羅世傑)의 손자로, 아버지는 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 나익(羅瀷)이다. 어머니는 종실(宗室)인 고흥부수(高興副守) 이억천(李億千)의 딸이다. 1537년(중종 32) 10세 때 아버지 나익은 김안로(金安老)를 배척하다 죽임을 당하였다. 1545년(명종 1) 을사사화(乙巳士禍) 때는 숙부(叔父) 나식(羅湜)을 비롯한 형과 동생이 모두 화를 당하였다. 가문이 어려워 초야에 묻혀 살다가 1558년(명종 13) 무오식년사마시(戊午式年司馬試)에 생원 3등으로 합격하고, 1573년(선조 6) 계유식년문과(癸酉式年文科) 병과 5등에 급제하여 성균관학유(成均館學諭)를 지냈다. 1578년(선조 11) 향년 52세로 세상을 떠나 광주(廣州) 북방리(北方里)에 장사지냈다. 부인은 전주이씨(全州李氏)로 정종(定宗)의 후손인 이원기(李元紀)의 딸이다. 2남 6녀를 두었는데, 큰아들은 나적(羅績), 둘째 아들은 세자시강원보덕(世子侍講院輔德) 나급(羅級)이다. 나급은 1남을 두었는데, 좌의정(左議政)에 추증된 나만갑(羅萬甲)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