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김자행(金自行)
  • 안동김씨(安東金氏),  출생~사망 : 1412 ~ 1489
조선 전기의 문신. 자는 안이(安而). 서운관정(書雲觀正) 김완(金緩)의 손자이며 집의(執義) 김질(金晊)의 아들이다.

1429년(세종 11)에 현량(賢良)으로 천거되어 소문전직장(昭文殿直長)에 특배(特拜)되고 이어 해주판관(海州判官)으로 나가 선정(善政)을 베풀었다. 그뒤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 지평(持平), 병조정랑(兵曹正郞) 등 여러 관직을 역임한 다음 영흥(永興), 정평(定平) 양도호부사(兩都護府使)로 나갔다가 돌아와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가 되었다. 외직인 성주(星州), 나주(羅州), 광주목사(廣州牧使)를 지내면서 혜정(惠政)을 베풀었다. 그 뒤 이조참의(吏曹參議), 황해도관찰사(黃海道觀察使), 예조참의(禮曹參議)를 지내고 이어 강원도(江原道), 경상도관찰사(慶尙道觀察使)를 역임하였다. 1451년(문종 1)에 서울 사직단(社稷壇) 북쪽 도성(都城)이 무너진 것을 보고 이명민(李明敏)과 함께 도성수축(都城修築) 감독관이 되어 경기(京畿), 충청(忠淸), 전라도(全羅道)의 선군(船軍)을 1회에 1, 000∼2, 000명씩 동원하여 도성 수축에 공을 세웠다. 1481년(성종 12)에는 경상도관찰사로 부임하여 경상북도 안동(安東)의 태사묘(太師廟)의 묘우(廟宇) 터전을 마련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