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전기의 문신. 자는 성지(性之). 온(溫)의 손자로, 육(育)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이백찬(李伯撰)의 딸이다. 1442년(세종 24) 친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453년(단종 1) 3월 평안도도사로 재직할 때 해주 온정(溫井)에 왔던 안평대군(安平大君)이 낙마로 상처를 입었는데 그 치료에 온갖 정성을 다하였고, 이것을 계기로 결의형제하였다. 대군의 치료를 근거로 통덕랑으로 가계(加階)되었으나, 그 부당성을 지적하는 사헌부, 사간원의 연이은 상소로 같은해 5월 가계는 취소되었다. 같은해 10월 병조정랑으로 안평대군의 역모에 연루되어 극변(極邊)에 안치되고 고신(告身)이 추탈되었으며, 유배지에서 죽었다. 1469년(예종 1) 3월 추탈되었던 고신이 환급되고, 후일 이조판서로 증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