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전기의 문신. 자는 성부(誠夫). 아버지는 대호군(大護軍) 이었는데, 족제(族弟) 우후(虞侯) 김숭의(金崇義)의 아들이었던 그를 데려다 후사로 삼았다. 나이가 많도록 학문할 줄을 모르다가 초당(草堂) 허엽(許曄)의 가르침을 받아 분발하였다. 을사사화(乙巳士禍)에 징계된 여러 노선생(老先生)들이 모여서 강의하고 글을 가르쳤는데, 그 문인인 한윤명(韓胤明), 신후(申煦), 김근공(金謹恭) 등과 종유하였다. 문공(門功)으로 3품의 계자(階資)를 받았다. 1565년(명종 20) 12월에 향년 38세로 세상을 떠나 광주(廣州) 선영에 장사지냈다. 부인 순흥안씨(順興安氏)는 문성공(文成公) 안유(安裕)의 후손으로, 사직(司直) 안광옥(安光沃)의 딸이다. 4남을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