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전기의 문신. 자는 백응(伯應). 조부는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김영우(金靈雨)이고, 아버지는 강이습독관(講肄習讀官) 김현(金俔)이다. 어머니 안동전씨(安東全氏)는 생원 전윤서(全允序)의 딸이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서 혼자 힘으로 학업을 이루어, 1522년(중종 17) 임오식년사마시(壬午式年司馬試)에 생원 2등, 진사 3등에 합격하였다. 그러나 유사(有司)와 타협하지 못하여 매번 벼슬에 천거되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1541년(중종 36) 태학생(太學生)으로 천거되어 사재감참봉(司宰監參奉)이 되었고, 선원전(璿源殿)을 거쳐 1544년(중종 39) 영릉참봉(英陵參奉)에 제수되었다. 온화하고 단아하며 절개를 숭상하였고, 충암(沖菴) 김정(金淨) 등 여러 선배와 교류하면서 학문을 깊이 연구하였다. 홀로 되신 어머니를 극진히 봉양하였으며 형제간의 우애도 돈독하였다. 1545년(인종 1) 3월 선영(先塋)을 보살피다가 병을 얻어 생을 마쳐, 같은 해 5월 교동현(喬桐縣) 남우동(南牛洞)의 선영 곁에 장사 지냈다. 전처는 충순위(忠順衛) 김중진(金仲珍)의 딸로 후사가 없고, 후처는 전부장(前部將) 김언광(金彦光)의 딸이다. 아들은 김호신(金虎臣)과 김호변(金虎變)을 두었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서 혼자 힘으로 학업을 이루어, 1522년(중종 17) 임오식년사마시(壬午式年司馬試)에 생원 2등, 진사 3등에 합격하였다. 그러나 유사(有司)와 타협하지 못하여 매번 벼슬에 천거되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1541년(중종 36) 태학생(太學生)으로 천거되어 사재감참봉(司宰監參奉)이 되었고, 선원전(璿源殿)을 거쳐 1544년(중종 39) 영릉참봉(英陵參奉)에 제수되었다. 온화하고 단아하며 절개를 숭상하였고, 충암(沖菴) 김정(金淨) 등 여러 선배와 교류하면서 학문을 깊이 연구하였다. 홀로 되신 어머니를 극진히 봉양하였으며 형제간의 우애도 돈독하였다. 1545년(인종 1) 3월 선영(先塋)을 보살피다가 병을 얻어 생을 마쳐, 같은 해 5월 교동현(喬桐縣) 남우동(南牛洞)의 선영 곁에 장사 지냈다. 전처는 충순위(忠順衛) 김중진(金仲珍)의 딸로 후사가 없고, 후처는 전부장(前部將) 김언광(金彦光)의 딸이다. 아들은 김호신(金虎臣)과 김호변(金虎變)을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