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전기의 문신. 자는 백응(伯凝), 정지(挺之). 호는 병암(屛菴), 수재(睡齋). 아버지는 생원 이이며, 어머니는 덕수이씨로 현감 의영(宜榮)의 딸이다. 동생은 수담(壽聃)이다. 1510년(중종 5) 생원시에 합격하고 1514년 사가독서(賜暇讀書)를 했다. 1516년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 승문원부정자에 제수되었다가 곧 검열에 천거되었고, 주서(注書), 부수찬, 정언, 수찬, 이조좌랑 등을 역임하였다. 1519년 기묘사화가 일어나던 날 밤, 재상들이 예문관 관원을 파직하기를 청하였을 때 이조좌랑으로 패초(牌招)를 받고 대궐에 이르러 '만약 사관을 다 파면하면 오늘날 기주(記注)는 누가 담당해 닦으오리까. ' 하며 항의한 바 있다. 또한, 조광조(趙光祖) 등을 치죄할 때 왕이 적법한 절차를 밟지 않고 성운(成雲)을 승지에 임명하자, 그 고신(告身)에 서명하지 않는 등 사림파의 성향을 띠어 파직되었다. 1533년 가을에 이준경(李浚慶) 및 아우 수담 등의 힘으로 구례현감으로 서용되었으나, 재직중에 죽었다. 그는 김정(金淨) 등과 도의(道義)로써 사귀고, 경학(經學)에 몰두하여 많은 후진을 양성하였다. 성품이 겉으로는 온화한듯하면서도 안으로는 강의(剛毅)하여 모든 비의(非義)에 조금도 굽히지 않았으므로 남의 경복(敬服)하는 바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