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이달선(李達善)
  • 광산이씨(光山李氏),  출생~사망 : 1457 ~ 1505
조선 전기의 문신. 자는 겸지(兼之). 증조부는 이일영(李日英)이고, 필문(畢門) 이선제(李先齊)의 손자이자, 김종직(金宗直)의 문인인 예조참판(禮曹參判) 이형원(李亨元)의 둘째 아들이다. 어머니는 이권(李○)의 딸이다. 순흥안씨(順興安氏) 안요경(安堯卿)의 딸과 혼인하여 이공인(李公仁)을 낳았는데, 그는 1519년(중종 14) 기묘식년문과(己卯式年文科)에 을과 6등으로 급제하여 한림(翰林), 수찬(修撰)을 역임하였다. 1552년(명종 7) 임자식년문과(壬子式年文科)에 병과 17등으로 급제한 대사간(大司諫) 이중호(李仲虎)가 그의 손자이다. 1483년(성종 14) 계묘식년사마시(癸卯式年司馬試)에 생원 1등, 진사 2등으로 합격하였다. 1486년(성종 17) 병오식년문과(丙午式年文科)에 갑과 3등으로 급제하여 한림옥당(翰林玉堂: 홍문관)을 거쳐 1492년(성종 23) 호당(湖堂: 독서당)에 들어가고 벼슬이 상의원정(尙衣院正) 지제교(知製敎)에 이르렀다. 그러나 1498년(연산 4) 7월 무오사화(戊午士禍) 때에 장형(杖刑)을 당하고 유배지에서 일찍 죽었다. 오언절구로 이루어진 그의 시 '신륵사(神勒寺)'가 '東文選'에 전해지고 그의 묘갈비(墓碣碑) 광산이씨 승지공비(光山李氏承旨公碑)가 전라남도 화순군(和順郡) 화순읍(和順邑) 앵남리(鸚南里)에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