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유음(兪廕)
  • 고령유씨(高靈兪氏),  출생~사망 : 1401 ~ 1482
조선 전기의 문신. 선조(先祖) 유적진(兪迪珍)은 고을의 아전(衙前) 이었으나 당시 3정1자(三丁一子)의 원칙에 따라 아들 유송기(兪松奇)가 아전의 신분에서 벗어났다. 그래서 할아버지 유견백(兪堅伯)은 군기시소감(軍器寺少監)을 지냈고, 아버지 유신(兪信)은 감문위중령낭장(監門衛中領郞將)을 지냈다. 어머니는 보승낭장(保勝郞將) 서안경(徐安敬)의 딸이다.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의 보살핌으로 학업에 전진하였다. 경서(經書)를 통달하였고 여러번 향천(鄕薦)을 받았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자 영리(榮利)의 뜻을 끊어버렸다. 전처는 사직(司直) 진보상(陳普祥)의 딸이고, 후처는 녹사(錄事) 이절(李節)의 딸이다. 중년에 전처를 먼저 잃자, 함양이씨(咸陽李氏)의 가문에 사위가 되면서 처가에서 살았다. 3남 4녀를 두었는데 모두 후처인 이씨 소생이다. 장남 유호인(兪好仁)은 1474년(성종 5) 갑오식년문과(甲午式年文科)에 병과 20등으로 합격하여 승문원(承文院), 봉상시(奉常寺)를 거쳐 예문관(藝文館)에 들어가 경연(經筵)에서 임금을 모셨다. 셋째 아들 유호례(兪好禮)는 1480년(성종 11) 경자식년사마시(庚子式年司馬試)에 진사 1등으로 합격하였고, 1501년(연산군 7) 신유식년문과(辛酉式年文科)에 병과 1등으로 급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