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말기의 문신. 호는 혜석(惠石). 판서 영하(寧夏)의 아들이다. 동몽교관(童蒙敎官)을 지내고, 1887년(고종 24)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검열, 설서, 응교, 총어영군사마(摠禦營軍司馬), 동부승지, 대사성, 형조참의, 공조참의 등을 역임하였다. 1897년 친위제3대장, 육군참장(陸軍參將)을 거쳐 원수부군무국장(元帥府軍務局長), 육군법원장, 무관학교장, 시종무관장을 역임하였다. 1904년 훈2등태극장(勳二等太極章)을 받았고 이듬해 일본육군 시찰의 특명을 받고 일본에 건너가 일본 훈1등욱일대수장(勳一等旭日大綬章)을 받았으며, 1907년에 다시 일본에 건너가 군무를 시찰하고 돌아왔다. 이무렵 일진회(一進會)에 들어가 일본의 앞잡이 노릇을 하였으며, 1910년 국권상실 후 일본정부로부터 남작의 작위를 받았다. 서화에 뛰어났으며 난초를 잘 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