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말기의 문신. 초명은 근형(根瀅). 호는 송오(松悟). 대신 근택(根澤)의 아우이다. 1880년(고종 17)까지 가정에서 수학하다가 1892년 5월 성균관진사가 되었고, 그해 7월 어학교에 입학, 속성으로 졸업하였으며, 1895년 10월 군부주사(軍部主事)에 임명되었다. 이듬해 6품으로 승급하였고, 1898년 궁내부참리관이 되었으며, 이듬해 시종원시종이 되었다. 1901년 포천군수에 임명되었으며, 같은해 9월 옥과군수, 이듬해 임실군수 등을 역임하였다. 1903년 중추원의관, 외부교섭국장, 법부법무국장, 박문원부장(博文院副長), 궁내부협판, 예식원부장 등을 두루 거쳤다. 이듬해 이탈리아 주차(駐箚) 특명전권공사가 되었고, 같은해 내장원감독, 예식원부장, 농상공부협판, 한미전기회사검찰장, 농상공부서리대신, 제실제도정리국의정관(帝室制度整理局議定官) 등을 역임하였다. 1905년 법부협판 및 법관양성소장, 법부법률기초위원장을 겸임하였고, 같은해 3월 일본특파대사 수행원에 임명되었으며, 이해에 팔괘장(八卦章)을 수여받았다. 이어 시종원부경서리, 학부협판, 중추원찬의가 되었다. 같은해 10월 예식원예식경이 되었고, 1906년 제도국총재(制度局總裁)를 겸임하고, 그해 6월 경상북도관찰사에 임명되었다. 7월에는 궁내부대신이 되었고 이어 중추원부의장이 되었다. 1907년 수학원장(修學院長), 시종원경, 궁내부대신, 중추원부의장 등의 요직을 역임하였다. 1910년 국권상실 이후 일본 정부에 협조한 공로로 남작의 작위를 받았으며, 조선총독부 중추원고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