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말기의 문신. 자는 치경(稚經). 지렴(知濂)의 손자, 단화(端和)의 아들이다. 1858년(철종 9) 정시별시문과에 병과로 입격되었다. 1863년(고종 즉위년) 12월 사헌부지평을 지내고, 이듬해에는 홍문관수찬에 임명되었다. 이때 김진형(金鎭衡) 사건에 관련된 상소를 자주 올리기도 하였다. 그해 6월 효문전(孝文殿) 헌례시에는 대축(大祝)으로 참여하여 가자(加資)되었으며, 9월에는 승정원우부승지로 있으면서 뇌이(雷異)가 잦은 이유로 왕에게 진면(陳勉)의 소를 올리기도 하였다. 1865년에는 좌승지에 오르고 부제조(副提調)에 차하(差下)되었다. 이해 9월에는 경복궁의 각 전당(殿堂)의 각 문의 현판에 대한 서사관(書寫官)을 임명할 때 만춘전(萬春殿) 서사관에 임명되었다. 이듬해는 우승지를 거쳤다. 1867년 성균관대사성에 올랐으며, 1870년 1월 이조참의가 되었다. 이해 3월에는 가자를 받았으며, 이듬해에는 외직인 의주부사로 임명되어 신미양요와 관련된 일들을 처리하였다. 1872년에는 이조참판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