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말기의 문신. 자는 중필(仲弼). 호는 삼송(三松). 아버지는 목사 김지순(金芝淳)이며, 어머니는 민종현(閔鍾懸)의 딸이다. 종숙인 김홍순(金鴻淳)에게 입양되었고 영흥부원군(永興府院君) 김조근(金祖根)의 동생이다.
1837년(헌종 3) 판관으로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사복시정(司僕寺正), 대사성, 부제학, 직제학, 경기도관찰사, 이조참판을 거쳐, 형조판서, 대사헌, 예조판서, 함경도관찰사, 판의금부사, 한성부판윤, 공조판서, 원접사, 규장각제학, 병조판서, 좌참찬 등을 역임했다. 고종이 즉위하고 대원군이 집권하여 안동김씨의 고관들이 모두 밀려남에 따라 물러났다가, 1864년에 다시 예문관제학, 광주유수(廣州留守)가 되었다. 시호는 문헌(文憲)이다.
1837년(헌종 3) 판관으로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사복시정(司僕寺正), 대사성, 부제학, 직제학, 경기도관찰사, 이조참판을 거쳐, 형조판서, 대사헌, 예조판서, 함경도관찰사, 판의금부사, 한성부판윤, 공조판서, 원접사, 규장각제학, 병조판서, 좌참찬 등을 역임했다. 고종이 즉위하고 대원군이 집권하여 안동김씨의 고관들이 모두 밀려남에 따라 물러났다가, 1864년에 다시 예문관제학, 광주유수(廣州留守)가 되었다. 시호는 문헌(文憲)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