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말기의 문신. 자는 영숙(英叔). 과천 출신. 종창(鍾昌)의 아들로, 종림(鍾林)에게 입양되었다. 1873년(고종 10)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수찬(修撰)에 제수되었다. 그뒤 부교리, 부수찬을 거쳐, 1888년 대사성이 되었다. 이때 함경도 영흥 부민들이 환전(還錢)의 고통을 견디다 못하여 민란을 일으키자, 안핵사로 파견되어 난의 책임을 물어 함경감사, 함경도병마절도사, 영흥부사 등을 모두 유배가게 하였다. 같은해 대사간을 거쳐, 1891년 이조참의, 주진감리(駐津監理)를 지냈다. 1898년 함경남도관찰사와 평안남도관찰사를 역임하였고, 1901년부터 1904년 사이 세 차례에 걸쳐 궁내부특진관을 지냈으며, 1907년 중추원찬의(中樞院贊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