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말기의 문신. 자는 성향(聖享). 영목(永穆)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홍영주(洪寧周)의 딸이다. 1875년 진사로서 춘도기(春到記)에서 제술을 하고, 전시(殿試)에 직부(直赴) 하라는 특명을 받았다. 1878년 증광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그뒤 홍문관응교를 지냈고, 갑신정변 뒤 민씨정권이 군제를 개편할 때 잠시 군사마(軍司馬)를 지냈다. 1890년 갑신정변의 연루자로 투옥되었던 박호양(朴顥陽)이 방면되자 사간원대사간으로 강력하게 반대하였다. 1892년 예조참의로 왕세자수하절목(王世子受賀節目)수정작업에 참여하였는데, 그 절목이 이용원(李容元)에게 비판을 받자 사임하고자 하였으나 허락받지 못하였다. 1900년을 전후하여 광주군수(光州郡守), 경주군수로 재임하였는데, 탁지부에서 그가 모리배와 짜고 세금 상공을 지체하였고, 교체시에도 세금관계가 불분명하므로 면관시키고 조사할 것을 요청하였다. 이에 1907년 비서승(○書丞)에 임명될 때까지 관직에서 물러나 있었고, 순종의 즉위식에 비서승 겸 장례(○書丞兼掌禮)로 활약하였다. 또한, 규장각기주관을 지냈으며, 1910년 8월 훈3등(勳三等)을 받고, 정2품으로 승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