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박용대(朴容大)
  • 밀양박씨(密陽朴氏),  출생~사망 : 1849 ~ ?
조선 말기의 문신. 자는 성기(聖器). 서울 출생. 이조판서 문정공(文貞公) 승휘(承輝)의 손자이고, 공조참의 세병(世秉)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광주이씨(廣州李氏)이다. 한학에 입문 일본에 유학하였다. 1865년(고종 2) 진사에 합격하고, 1869년 정시문과에 급제하여 이듬해 주서(注書)에 제수되었다. 1871년 홍문관부수찬(弘文館副修撰)이 된 뒤, 평북감시(平北監試), 경시관(京試官), 충청우도암행어사, 응교를 거쳐 1875년 호조참의를 지냈다. 1886년 이조참판, 1888년 별시초시시관(別試初試試官)과 한성좌윤, 이듬해 승정원일기청당상(承政院日記廳堂上)과 호조참판을 역임하였다. 1891년 대사성에 제수되었으나 곧 사임하였다. 1894년 갑오개혁에 참여, 의정부교정당상(議政府校正堂上)에 중용되어 제도개혁에 일익을 담당하였으며 곧 의정부도헌(議政府都憲)에 임명되었다. 이듬해 중추원의관(中樞院議官) 칙임4등이 되었으나 모친상으로 사직, 시묘하였다. 1897년에 복직, 중추원의관 칙임3등에 제수되었으며, 이듬해 봉상사제조(奉常司提調)가 되었다. 1899년 정2품 비서원경에 임명, 법규교정소의정관(法規校正所議定官)을 겸임하였다. 이듬해 충청남도관찰사로 부임하여 덕화를 사방에 펼쳤다. 1901년 부친상을 당하여 사직하였다가 1903년 복직, 문헌비고찬집소당상(文獻備考纂輯所堂上), 태의원경(太醫院卿)에 임명, 그뒤 비서경과 태의원경을 차례로 역임하였고, 1905년에 법부대신이 되었다. 1906년 홍문관학사, 이듬해 규장각제학이 되어 '문헌비고'를 편찬 완료하여 고종에게 진상하였다. 1908년 국조보감감인관(國朝寶鑑監印官)에 제수되었으며, 이듬해 훈2등(勳二等)훈장을 받았다. 1910년 경술국치 후 일제의 회유책의 일환으로 남작의 작위를 받았다. 시서에 능하여 당대에 문명을 날렸으며, 일본 유람시 후지산(富士山)에 관한 시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