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말기의 문신. 일명 완평군(完平君). 1869년(고종 6) 판의금부사가 되었고, 1874년 진하정사(陳賀正使)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1875년에도 진하 겸 사은정사(陳賀兼謝恩正使)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난 1894년에는 판돈령부사에 임명되었고, 1896년에는 궁내부특진관을 지냈다. 1898년 홍릉제조(洪陵提調), 영릉헌관(英陵獻官)을 지냈으며, 1901년에는 책비시정사(○妃時正使)로 임명되었고, 1903년 책황귀비시정사(○皇貴妃時正使), 1904년 황실제도정리국총재(皇室制度整理局總裁), 종정원경(宗正院卿)을 지냈다. 시호는 효헌(孝憲)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