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말기의 문신. 인영(寅泳)의 아들로 승지 준영(俊泳)에게 입양되었다. 종친과 고관의 후손을 대거 입격시킨 1885년(고종 22) 증광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고, 현종의 3녀인 명안공주(明安公主)의 종손이었으므로 사악(賜樂)을 받았다. 그뒤 관계에 올라 주로 홍문관정자와 세자시강원, 설서, 필선 등 정7품에서 정4품의 관직을 순조롭게 천임하였다. 1892년 성균관대사성, 다음해 승지가 되었다. 그러나 친일세력 주도하에 갑오경장이 시행되면서 많은 관리들이 신식제도에 어둡고 불필요하다는 이유로 강제로 퇴직당하였는데, 역시 그때 관계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다시 정계에 복귀한 때는 아관파천으로 수구파가 정권을 공고하게 잡은 1899년이었다. 그뒤 많은 구관료출신들처럼 주로 왕실의 전례, 의장에 관련된 장례원소경, 궁내부특진관, 규장각학사, 봉상사제조, 경효전제조와 같은 직책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