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남정순(南廷順)
  • 의령남씨(宜寧南氏),  출생~사망 : 1819 ~ ?
조선 말기의 문신. 영중(英中)의 아들이다. 1848년(헌종 14) 증광별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 철종 때 동래, 이천의 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1866년(고종 3) 병인박해가 시작될 무렵 우승지로서 문중(門中)의 현직관리들과 함께 천주교도의 대표격으로 지목되어 체포당한 전 승지(承旨) 남종삼(南鍾三)의 처벌을 요구하는 상소를 올렸다. 남종삼사건 이후 주위의 오해를 피하려고 1867년부터 종순이라는 초명을 정순으로 바꾼 듯하다. 그뒤 대사간, 이조참판, 호조참판, 규장각직제학을 거쳐 1872년 평안도관찰사가 되었다. 평안도관찰사 재임중 당시 성행하던 청국선(淸國船)의 밀무역을 막는 데 공헌하였으나, 사소한 행정상의 실수로 고금도(古今島)에 유배당하였다. 그뒤 각각 두 차례에 걸쳐 한성부판윤, 형조판서 등을 지냈다. 또한 강원도관찰사, 함경도안무사, 공조판서 등을 거쳐 1895년 이조판서가 되었다. 함경도안무사로 있을 때 국방력의 강화를 위하여 종래 유명무실하던 영포군(營砲軍)을 정비하였으며 길주민란을 진압하였다. 할아버지인 이익(履翼)과 함께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다. 시호는 효정(孝貞)이다. 초명은 종순(鍾順), 자는 성휴(聖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