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말기의 문신. 아버지는 판서 정익(廷益)이다. 1877년(고종 14)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1880년 승정원주서(承政院注書), 다음해 홍문관의 교리, 수찬이 되었다. 그뒤 규장각직각(奎章閣直閣), 사헌부장령 등의 문한(文翰), 감찰직을 거쳐 1886년에는 동부승지가 되었다. 또, 1901년 궁내부특진관으로 비서원승(○書院丞)에 임명되어 윤발(綸○)과 '일성록 日省錄'의 보충작업을 주관하여 감독하기도 하였다. 그뒤 전선사장(典膳司長), 태복사장(太僕司長), 규장각직학사(奎章閣直學士), 장례원소경(掌禮院少卿), 봉상사제조(奉常司提調), 중추원의관(中樞院醫官) 등을 두루 역임하였으며, 1910년 국권상실 이후에도 계속 관계에 남아, 조선총독부에서 그 산하기구로 설치한 중추원의 찬의(贊議)가 되어 일제의 이른바 신사명부(紳士名簿)에도 올랐다. 또, '고종실록', '순종실록'의 편찬위원을 지내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