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민영린(閔泳璘)
  • 여흥민씨(驪興閔氏),  출생~사망 : 1873 ~ ?
조선 말기의 문신. 서울 출신. 술호(述鎬)의 아들로, 여은부원군(驪恩府院君) 태호(台鎬)에게 입양되었으며, 순종 비인 순명황후(純明皇后)의 오빠이다. 1890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시강원설서(侍講院說書)에 임명되고 이듬해 시강원 겸 문학, 필선(弼善)을 거쳐 1892년 이조정랑, 성균관대사성이 되었다. 1898년 비서감(○書監)의 비서승 겸 장례(○書丞兼掌禮), 이어서 궁내부특진관에 임명되었고, 이듬해 궁내부협판, 서리대신사무(署理大臣事務)를 역임, 1900년 동지돈령부사(同知敦寧府事), 경효전제조(景孝殿提調)를 지냈다. 1904년 예식원부장(禮式院副長), 내장원감독(內藏院監督)을 거쳐 다시 동지돈령부사가 되었으며 특명전권공사를 겸임, 일본에 다녀왔다. 그뒤 비서원경(○書院卿), 궁내부특진관 등 여러 관직을 역임하고, 1907년 시강원첨사(侍講院詹事)에 재임중 조동윤(趙東潤) 등 15인과 함께 재차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궁내성 사무를 시찰하고 돌아왔다. 그해 11월 규장각제학에 임명되고 이어 장례원경(掌禮院卿), 지돈령부사를 역임하였다. 1910년 일제에 강제 합병당할 때 일본정부로부터 백작의 작위와 12만원의 은사금을 받았다. 그해 이기동(李基東)과 함께 '제국신문'을 인수하려고 하였으나 사장 정운복(鄭雲復) 과의 충돌로 실패하였다. 뒤에 작위를 취소당하였다. 초명은 영기(泳琦), 자는 기옥(奇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