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말기의 문신. 범조(範朝)의 아들이다. 1882년(고종 19) 유학(幼學)으로서 증광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1885년 대교가 된 뒤 시강원사서, 이조정랑 등을 역임하였다. 1889년에는 왕세자가 종묘에서 동향(冬享)하였을 때 대축(大祝)을 한 공으로 가자(加資)되었고, 이해 성균관대사성에 임명되었으며 1894년에는 이조참의, 동지경연사(同知經筵事) 등을 지냈다. 1897년에는 중추원의관(中樞院議官)에 임명되어 칙임관 4등이 주어졌고 1900년에는 궁내부특진관이 되었다. 이해 선희궁(宣禧宮) 작헌례(酌獻禮)에 겸장례비서승(兼掌禮○書丞)으로 참여하여 가자되었다. 1901년에는 '일성록 日省錄'의 편찬을 감독하는 윤발일성록보충감독(綸○日省錄補充監督)으로 임명되고, 이듬해 봉상사제조(奉常司提調)가 되었다. 1903년에는 외직을 맡아 경기도, 충청남도의 관찰사를 지내고 이듬해 다시 중추원의관으로 기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