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말기의 문신. 경기도 여주 출신. 은산현감(殷山縣監) 영수(永秀)의 아들이다. 1885년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출사(出仕)한 뒤, 1887년에는 다시 한림소시(翰林召試)에 선발되었다. 그뒤 설서(說書), 응교(應敎), 필선(弼善), 이조정랑, 성균관대사성, 이조참의, 이조참판 등을 두루 거친 뒤, 1897년 궁내부특진관이 되었다. 그러나 1901년 군인들에게 단발(斷髮)의 조칙이 내려지자 궁내부특진관으로 있으면서 그 조칙의 철회를 주장하다가 탄핵을 받아 파면, 유배되었다가 이듬해 풀려났다. 그뒤 경상남도관찰사와 황해도관찰사를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