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말기의 문신. 겸수(謙洙)의 손자, 병두(秉斗)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성주이씨(星州李氏)로 교인(敎寅)의 딸이다. 1885년(고종 22)에 증광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이해 9월에는 홍문관수찬이 되고, 1890년에 부교리를 거쳐, 이듬해에는 부응교가 되었다. 1894년 교리로 있으면서 동학농민전쟁 발발을 초래한 책임을 물어 당시 전라감사 였던 김문현(金文鉉)에 대한 처벌을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계문(啓文)을 삼사(三司) 합동으로 자주 올리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