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민형식(閔炯植)
  • 여흥민씨(驪興閔氏),  출생~사망 : 1859 ~ ?
조선 말기의 문신. 1882년(고종 19) 임오군란으로 민비(閔妃)가 충주로 피신할 때 호종하였으며, 별천(別薦)을 시작으로, 남행별군(南行別軍), 선전관, 훈련원첨정, 철산부사(鐵山府使)를 거쳐 병조참의, 오위장(五衛將)을 지냈다. 이어 선천방어사(宣川防禦使), 전라우도수군절도사, 전라도병마절도사, 병조참판, 형조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1892년 통제사(統制使), 영남광무회판(嶺南鑛務會辦)을 지냈다. 1894년 갑오경장으로 김홍집내각(金弘集內閣)이 수립되자 척신(戚臣)계열의 거두들과 함께 밀려나 전 통제사 때의 탐학에 의하여 녹도(鹿島)에 유배되었다. 그뒤 풀려나 1896년 중추원1등의관, 1901년 중추원의관, 1904년 의정부찬정, 궁내부특진관에 임명되었으며, 서훈2등이 특승(特陞)되기도 하였다. 1905년 특명전권공사, 중추원찬의를 역임하였으며, 1906년 육군부장(陸軍副將), 1907년 참모관을 지냈다. 1910년 국권을 강탈한 일제에 의하여 남작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