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말기의 문신, 친일정객. 충청남도 공주 출신. 노론파의 자손으로 의익(義益)의 아들이다. 1879년(고종 16) 문과에 급제한 뒤 1884년 3월 주청상무서기관(駐淸商務書記官)이 되어 청나라 톈진(天津)에 주재하면서 약 1년간 청나라의 문물과 제도를 시찰한 뒤 귀국하였다. 1885년 4월 홍문관수찬, 1889년에는 형조참의, 좌부승지, 한성부소윤 등을 역임하였고, 1890년 9월 인천부사 겸 감리(仁川府使兼監理)가 되어 각국과의 교섭 및 통상업무 등을 담당하였다. 1900년 11월 주차일본전권공사(駐箚日本全權公使)로 약 반년간 주재하면서 일본을 연구하였다. 1902년 12월 철도원 총재로 경부선철도공사에 관여하였고, 1904년 이후 경상남도, 충청북도, 경기도관찰사를 거쳐, 1906년 11월 박제순(朴齊純) 친일내각의 농상공부대신, 1907년 6월 중추원부의장, 1908년 장례원경(掌禮院卿)을 역임하였다. 1910년 우리나라가 일제에 강제로 병탄당한 뒤 일본정부로부터 남작의 작위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