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조중완(趙重完)
  • 양주조씨(楊州趙氏),  출생~사망 : 1879 ~ 1942
조선 후기의 무인. 조부는 조병직(趙秉稷)이다. 1898년 6월 무관학교에 입학하여 1900년 1월 졸업과 동시에 육군참위(陸軍參尉)로 임용되었다. 친위대(親衛隊), 시위대(侍衛隊) 등지에서 근무하고, 1904년에 육군헌병 부위(副尉), 군법회의판사(軍法會議判士), 기병대(騎兵隊), 보병부위(步兵副衛) 등을 거쳐 이듬해 육군연성학교교관(陸軍硏成學校敎官)이 되었다. 1906년에는 헌병 정위(正尉), 헌병대 구대장(區隊長)을 거쳐 구한국의 무관인 참령(參領)으로 근무하였다. 한일합방 후 거주지였던 서울의 계동(桂洞)에서 경기도 군포로 이거(移居)하였다. 1916년 경기도 시흥군 남면의 면장이 되었고, 1921년과 1924년에 경기도 평의회원이 되었다. 그리고 1926년 무렵에는 사설 군포우체국장으로 농촌진흥과 풍속개량을 목적으로 시흥군남면진흥회(始興郡南面振興會)를 조직하였다. 또한 1930년 12월부터 1939년 12월까지 시흥군 남면장을 다시 역임하였다. 이때 그는 농촌생활개선을 목적으로 한 농촌개량소조합을 결성하였다. 특히 그의 활동과 관련하여 비교적 잘 알려진 것은 군포공립보통학교(현 군포초등학교)를 설립하는데 기여하였는데, 당시 그는 관계당국과 교섭하여 자신이 학교설립에 소용되는 비용의 50% 이상을 출연했다고 한다. 1920년 4월 1일 군포공립보통학교는 교실 7개와 11개의 학급에 903명의 학생으로 개교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