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무인. 자는 여도(汝道). 춘당(春堂). 변맹량(卞孟良)의 후손으로, 1848년(헌종 14) 무과에 응시, 장원으로 급제하여, 1871년(고종 8)에 죽산부사(竹山府使)로 승진하였다. 1876년(고종 13)에 큰 흉년이 들자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양곡을 풀어 백성을 구제함은 물론 호서(湖西)와 해서(海西)에서 쌀 1, 000석을 사서 어려운 지경에 처한 이들을 도우니 주민이 모두 그를 친부모같이 존경하였다고 한다. 조정에서는이 소식을 듣고 그를 가상히 여겨 가선대부(嘉善大夫) 오위장(五衛將)에 임명하였다. 51세에 세상을 떠났고, 송해면 하도리 김작골에 안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