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허항(許沆)
  • 양천허씨(陽川許氏),  출생~사망 : ? ~ 1812
조선 후기의 무신. 자는 원숙(元淑). 첨사 수(秀)의 아들이다. 효성이 지극하고 담용(膽勇)이 뛰어나 어릴 때부터 말달리기와 칼쓰기를 좋아하였다. 27세 때 무과에 응시하였는데, 과규(科規)에는 합격하였으나, 방(榜)에는 누락되어 있어 방방(放榜)하던 날 억울한 사정을 왕에게 호소하기 위하여 궁중에 뛰어들어갔다가 위사(衛士)에게 붙잡혀 전옥(典獄)에 갇혔다.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서 나와 큰 소리로 억울함을 합외(閤外)에서 호소하니, 그 소리가 왕이 거처하는 대내(大內)에까지 들려 왕이 그에게 까닭을 묻고는 그 기백이 장하다 하여 급제를 내리고, 충장장(忠壯將)을 제수하였다. 1811년(순조 11) 홍경래(洪景來)의 난이 일어나자 거우(居憂) 중임에도 불구하고 분연히 일어나서 반도토벌에 앞장섰다.이 공으로 가의대부(嘉義大夫)에 오르고 우림장(羽林將)에 임명되었으나 전사하였다. 전공으로 통제사에 추증되었으며, 정려되고 정주의 표절사(表節祠)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