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무신. 자는 성빈(聖賓). 충무공(忠武公) 순신(舜臣)의 후손이며, 금위대장(禁衛大將) 한응(漢膺)의 아들이다. 무재(武才)를 인정받아 1784년(정조 8)에는 경상좌도병마절도사에 올랐고, 삼도수군통제사 등을 역임하였다. 성품이 강직하여 1803년(순조 3)에는 총융사로 있으면서 그의 부하 장교가 좌의정 서용보(徐龍輔)의 체모를 손상시킨 것으로 추고를 받으려 하자 이에 강력히 항의하여 다투다가 파직되었다. 그뒤 중용되어 좌우포도대장을 거쳐 1807년에는 금위대장에 임명되었고, 이때 군율을 엄하게 못한 책임으로 삭직되었다. 그러나 이순신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왕의 배려로 다시 총융사, 금위대장, 훈련대장에 임명되었다. 1812년에 노병으로 체직을 허락받았고 이듬해에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