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무신. 자는 사직(士直). 영조 때에 무과에 급제하여 1763년(영조 39) 당시 전라좌수사로서 혹정하였다는 사헌부의 탄핵으로 파직되었으나 1766년 승지를 거쳐 황해병사에 임명되었다. 정조가 즉위한 뒤 여사대장(轝士大將), 경기수사, 금군별장, 삼도수군통제사, 어영대장, 포도대장 등을 거쳐 1782년(정조 6) 금위대장 재임시 금중(禁中)소요로 동복현으로 유배당하였으나 곧 풀려나 금위대장, 포도대장, 어영대장, 훈련대장 등을 역임하였다. 1788년 정조의 황단(皇壇)행차 때에 북영(北營)에 주둔하라는 명을 병을 칭하고 나가지 않았다고 하여 사판(仕版)에서 이름이 지워졌다. 1791년 여주목사에 특보되고 수원부사를 거쳐, 1793년 형조판서에 임명되었다. 그뒤 어영대장, 훈련대장, 금위대장, 한성부판윤, 포도대장 등을 지냈다. 시호는 무숙(武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