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무신. 자는 명서(命瑞). 호는 물기재(勿欺齋). 희맹(希孟)의 9세손으로 전라도 무송(茂松: 지금의 高敞)에서 태어났다. 경과정시(慶科庭試)에 합격하여, 부장(部長), 사헌부감찰, 칠원현감(漆原縣監), 초계군수(草溪郡守), 대구영장(大丘營將), 고령진첨사(高嶺鎭僉使), 창성부사(昌城府使), 동래부사 등을 지냈다. 창성부사가 되어서는 부근의 지도를 작성하여 불의의 변에 대비한 바도 있다. 문집으로 족종손(族從孫) 우만(宇萬)이 엮은, '물기재집' 2권 1책이 전한다.이 문집에 그가 남긴 시조 '창성감고가 昌城感古歌' 1수와 가사 '무호가 武豪歌' 1편, 고령진의 백성들이 지은 가사 '고령진민선정가 高嶺鎭民善政歌' 1편이 실려 있다. '창성감고가'는 그가 창성에 이배(移配)되었을 때 지은 작품으로, 요동의 옛땅을 되찾지 못하는 통분함과 애국정신을 표현하였다. 그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후의 퇴폐한 시대상에 비통해하였으며, 이러한 의식 때문에 그의 작품은 애국애족을 주제로 하는 것이 대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