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백시구(白時耉)
  • 수원백씨(水原白氏),  출생~사망 : 1649 ~ 1722
조선 후기의 무신. 자는 덕로(德老). 원진(元振)의 아들이다. 여러번 과거에 응시하였으나 급제하지 못하다가 1680년(숙종 6) 무과에 응시하여 급제하였다. 1684년 선전관(宣傳官)이 되어 북로(北路)의 봉수(烽燧)를 조사하여 허술한 곳을 수축하게 하였다. 이어 초계군수가 되어서는 교육정책에 힘썼으며, 1708년 황해도병마절도사가 되었다. 1717년 함경도병마절도사를 거쳐, 평안도병마절도사를 지냈다. 절도사로 있을 때 군기들을 잘 수선하여 갖추어두고 병사들의 훈련에 힘써 국방에 주력하였다. 경종이 즉위하고 김일경(金一鏡) 등이 정권을 잡자, 노론의 구신들을 몰아낼 때 연좌되어 파직되었다. 평안도병마절도사로 있을 때 기로소(耆老所)에 백금을 빌려준 일이 있는데이 일로 반대파에 의하여 옥에 갇히고 문초를 받았다. 김일경, 목호룡(睦虎龍) 등에 의하여 신임사화가 일어날 때 이를 기화로 김창집(金昌集)의 죄상을 조작하려 하였다. 그러나 그는 심문에 단호히 불복하였다. 결국 고문에 못이겨 옥사하였으나, 뒤에 1741년(영조 17) 영조가 임인옥안(壬寅獄案)을 불태우고 탕평책을 쓸 때에 그의 관직을 복구하고 몰수하였던 재산도 후손에게 돌려주었으며 호조판서를 추증하였다. 유저(遺著)로는 '충장부군시고 忠莊府君詩稿' 1책이 있다. 시호는 충장(忠莊)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