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무인. 호는 송포(松圃). 평해군(平海君) 황희석(黃希碩)의 7세손으로 무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으며,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丙子胡亂)이 일어나자 파총(把摠)으로 전투에 참전하여 이삼(李參), 안몽상(安夢祥)과 함께 갑곶진을 방어하다가 전사했다. 그 후 1726년(영조 2) 강화유수(江華留守) 박사익(朴師益)이 장계를 올려 조정에 아뢰자, 조정에서는 공조참의(工曹參議)에 증직하고 정문을 세웠으며, 충렬사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