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무인. 어릴 때부터 지혜와 절개, 민첩함이 뛰어났으며, 무과에 급제하여 훈련첨정(訓練僉正)을 지냈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삼학사와 더불어 강화군영에 파총(把摠)으로 있었다.이 때 갑곶진이 무너지자 차명세(車命世), 황선신(黃善身), 강흥업(姜興業), 황대곤(黃大坤), 이삼(李參) 등과 함께 갑곶진에서 싸우다 전사하였다. 조정에서이 분전 소식을 접하고 병조참의(兵曹參議)에 추증하였다가 다시 병조판서(兵曹判書)로 증봉하였다. 같은 날 순절한 13인과 함께 표창하여 표충단에 배향되었으며, 매년 순절한 날이 되면 강화부교(江華府校)로 하여금 제사를 올리게 하였다. 사적비를 세우고 충렬사에 배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