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무신. 호는 지족당(知足堂). 청백리 수지(遂智)의 5대손이다. 일찍이 무과에 급제하였으나, 광해군 때 이이첨(李爾瞻)이 정권을 잡고 난정을 하자 이를 통박하다가 그의 무고로 10년간 철산(鐵山)에 유배되었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기용되어 특별히 양주목사에 제수되었다. 1624년 이괄(李适)의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워 진무원종공신(振武原從功臣)1등에 책록되고 3대가 추증되었다. 만년에는 향리 농장에 돌아가 '지족(知足)'이라는 편액을 걸고 학문에 전심하였다.